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색채 심리

무의식의 색

by unko99 2023. 1. 2.

어린아이의 색

 

오늘처럼 기온이 떨어지는 겨울 아침, 어떤 색으로 글을 써볼까? 아침의 쌀쌀함은 하얀색으로, 날씨가 조금 풀린 오후는 스카이블루로 써보고 싶다. 집안에 앉아서 이것저것 끄적이는 메모에도 기분이나 시간, 기온에 따라 쓰고 싶은 펜의 색이 달라지고 선택한 색이 내 마음의 에너지를 발산하는 색이 된다.

누군가 선택한 색 속에 그 사람의 기분이 나타난다는 것은 대단한 일이다. 아무 의식 없이 잡은 색이 그때의 심리상태를 나타내 준다면 시간이 지나서 그때를 되돌아볼 때 글뿐만 아니라 색으로도 그때의 감정을 읽어볼 수 있게 된다.

교사로서 학생들과 미술 시간에 그림을 그릴 때도 그 아이의 그림 속 색만으로도 그 아이의 감정을 들여다볼 때가 있다. 1947년 미국의 여성 교육자 알 슈우라의 [페인팅과 퍼스널리티]라는 리포트에 따르면 아이들의 그림에서 색의 쓰임을 분류하여 색채와 심리상태, 건강상태와의 관련을 조사하였다. 그 결과 예를 들면 노란색은 '행복하며 적극적인 아이', 보라색은 '침체하고 우울한 기분을 가진 불행한 아이' 등 각각의 색채가 상징하는 심신의 상태를 밝히고 있다. (이것이 전적으로 맞지는 않는 것 같다. 밝고 건강한 아이라도 그 순간의 기분에 의해 보라색을 선택할 때도 있으니 말이다) 이후의 연구에서 이 색채가 상징하는 의미는 성인의 경우와도 상당한 공통점이 있는 것으로 밝혀졌다. 이렇게 아동화에서 색의 연구가 진행된 것은 유아는 어느 정도 감각에 의존해 색을 선택하기 때문이다. 4~5세 정도까지 아이들은 자연스럽게 파란 태양이나 빨간 바다를 그리기도 한다. 형태 그 자체를 그릴 수 없기 때문에 그림의 중심은 '색'이 되고 기분의 변화가 반영된다.

6~7세가 되어 상식을 익히게 되면 하늘은 파란색, 나무는 초록색이라는 지식이 생겨나고 주변 어른들의 영향으로 아이들의 색 사용은 평범해진다. 감정을 표현하는 그림에서 지식을 표현하는 그림으로 변해버린다. 마음을 표현하는 우뇌적 그림에서 관찰화와 같은 좌뇌적 그림으로 바뀌어 버리는 것이다. 하지만 여전히 무의식의 색은 어른이 된 우리에게 마음을 표현하는 장치로 사용되고 옷을 고를 때조차도 색에 대한 욕구를 느끼게 한다. 나의 경우 아침 일찍 출근하기 때문에 전날에 미리 옷을 챙겨두는 경우가 많은데 갑자기 날씨가 변하거나 몸 상태가 달라지면 겉옷을 하얀색 옷에서 분홍색으로 바꾼다든지 위아래 같은 색 옷으로 입는 등 기분에 따라 마음에 드는 색이 달라진다. 

 

색의 영향


색은 우리의 의식과는 상관없이 긍정적 혹은 부정적 방식으로 우리에게 영향을 미친다. 자연에서의 색 경험은 우리에게 가장 오랫동안 영향을 미친다. 우리가 어떤 색에 부여하는 전이된 의미들도 역시 자연 경험에 근거한다. 새싹이 움트는 것을 보고 "녹색은 희망이다"라는 의미가 생겼듯 많은 자연에서의 경험이 상징적 의미를 가지게 된다. 방안의 벽지의 색, 주변 환경의 색들은 모두 우리에게 영향을 끼친다. 이 색들은 무의식적으로 우리의 기분을 좌우할 수도 있다. 늦가을 오후에 보는 빨간 단풍잎이나 노란 은행잎은 주변을 청량하게 만들 뿐 아니라 기분도 밝게 한다. 우리가 주변의 색을 마음대로 선택할 수 있다면, 색의 영향을 의식하는 것이 중요하다. 예를 들어 작업실의 색 분위기는 창의력을 발휘할 수 있게 하거나 방해할 수도 있고, 병실의 색조는 치유과정을 촉진하거나 저해하기도 한다. 반대로 우리가 입는 옷의 색이나 선호하거나 기피하는 색을 통해 자기 스스로 색채 신호를 주기도 한다. 우리가 검은 양복을 입은 사람을 본다면 '저 사람 오늘 상갓집에 가는 게 아닐까?'하고 추측하기도 하고 일반적인 일보다 좀 다른 일이 있을 것으로 예상한다. 반대로 빨간 원피스를 입은 여성을 본다면 '오늘 누구 만나러 가요?'하고 묻게 된다. 이처럼 색의 선택은 무의식에 의해 조종된다고 할 수 있다.

특정한 색이 유행을 타며 장기간 선호되는 것은 인간의 보다 깊은 욕구와 발전을 암시한다. 한동안 보라색은 여성운동을 하는 여성들의 상징으로 여겨졌다. 빨강과 파랑에서 만들어진, 즉 여성적 상징성과 남성적 상징성이 결합된 보라는 인간에게 내재한 남성적 몫과 여성적 몫 사이에서의 긴장을 내포하고 있다. 즉 의식적으로 보라색 옷을 입는 여성은 '단순히' 여성으로서만 아니라, 인간으로서의 자신을 이해하고 이해받고자 하는 것이다. 

색을 사용하는 것은 어떤 면에서는 자신을 이해받기 위한 하나의 제스쳐이며 가끔은 숨겨진 본능의 표출이다. 무의식의 색, 인간의 의식 저 너머에 담겨있는 무한의 의미를 찾기 위해 색이라는 돋보기로 들여다보는 것은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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